[VIEW] Avoided Emissions(회피된 배출) : 감축을 넘어 기후 기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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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 중심 기후 전략의 한계 기업의 기후 전략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지난 수년간 기업의 기후 대응은 ‘얼마를 덜 배출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평가되어 왔다. 직접 배출(Scope 1), 에너지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Scope 2), 그리고 공급망 전반의 배출(Scope 3)로 구성된 기존 온실가스 회계 체계는 기업 내부의 탄소 관리와 책임

감축 중심 기후 전략의 한계

기업의 기후 전략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지난 수년간 기업의 기후 대응은 ‘얼마를 덜 배출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평가되어 왔다. 직접 배출(Scope 1), 에너지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Scope 2), 그리고 공급망 전반의 배출(Scope 3)로 구성된 기존 온실가스 회계 체계는 기업 내부의 탄소 관리와 책임성 확보에는 효과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이 체계는 기업의 기술 혁신이 사회 전체의 배출 구조에 미치는 긍정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이다.

회피된 배출이란 무엇인가

회피된 배출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사용됨으로써 기업의 가치사슬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줄어든 온실가스 배출량¹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의 부정적 영향인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고객과 사회에 제공하는 긍정적 기여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탄소 손자국(Carbon Handprint) 이라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즉, 기업이 얼마나 덜 배출했는지가 아니라, 기업의 솔루션이 얼마나 사회가 덜 배출하도록 만들었는가를 평가하려는 시도다. 회피된 배출은 ‘스코프(Scope) 4’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기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범위인 스코프1·2·3이 포착하지 못하는 제품과 기술의 외부 감축 기여를 설명하기 위해 산업계에서 활용되기도 한다.²

왜 지금 회피된 배출인가

회피된 배출이 주목받는 배경은 분명하다. 우선 기업들의 탄소 중립(Net-zero) 선언은 확산되었지만 기업들은 곧 기술적·경제적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스코프 1~3 감축만으로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은 자사의 제품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감축 효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책과 자본의 판단 기준도 변화하고 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유럽연합 혁신기금, 각국의 녹색조달 정책은 제품 단위의 배출 차이를 요구하며, 기술과 제품이 만들어내는 감축 효과를 투자 평가와 자원 배분의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자자 역시 과거의 감축 실적뿐 아니라 미래 전환 잠재력을 평가 요소로 포함시키면서 회피된 배출은 기술의 미래 가치를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기업·정부·시장으로 확장되는 활용 사례

이미 일부 기업과 정부는 회피된 배출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지멘스(Siemens)는 ‘고객회피배출량(Customer Avoided Emissions, CAE)’이라는 지표를 통해 자사 기술이 고객의 탄소 경쟁력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매년 정량적으로 공개하며, 이를 지속가능성 보고뿐 아니라 마케팅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전략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관점을 ‘우리의 감축’에서 ‘고객의 성공’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공공 투자 영역에서도 흐름은 유사하다. 미국의 ARPA-E³는 건축 구조물을 탄소 저장 구조로 전환하는 기술을 평가⁴ 할 때, 기준 시나리오 대비 회피·저장 가능한 배출량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유럽연합 혁신기금 역시 프로젝트의 ‘GHG 회피 잠재량’을 주요 심사 항목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는 기술 혁신의 가치를 현재의 배출량이 아니라 미래의 감축 가능성으로 평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회피된 배출은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자산의 형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산림 파괴를 방지함으로써 발생할 배출을 ‘피했다’는 논리로 발행되는 REDD+( 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Plus)⁵ 크레딧이 대표적 사례이며, 최근에는 Jurisdictional REDD+로 전환되며 기준선 설정과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시장은 이제 얼마나 많은 감축을 주장하느냐보다, 얼마나 엄격하고 투명하게 검증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산 가치를 판단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회피된 배출이 가진 쟁점과 과제

그러나 회피된 배출에는 본질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이 개념은 다양한 가정과 선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준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동일한 감축 효과의 기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이중계상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데이터 신뢰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회피된 배출은 혁신의 언어가 아니라 그린워싱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결국 핵심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다. 얼마나 크게 제시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엄격한 방법론과 투명한 공개를 통해 설명했는지가 신뢰를 결정한다. 회피된 배출은 감축을 대체하는 지표가 아니라, 기업의 기후 기여를 설명하는 보조적·전망형 지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회피된 배출의 미래

제조업 중심·수출 주도형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에 이러한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국내 기업이 공급하는 소재와 부품이 글로벌 고객의 배출을 얼마나 줄이는지를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ESG 스토리를 넘어 산업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반대로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설득력은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감축의 시대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기업의 역할을 묻는 시대다. 회피된 배출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회피된 배출은 아직 완성된 개념이 아니다. 기준선과 귀속, 검증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논쟁과 합의의 과정 속에서, 탈탄소 전환 시대 기업의 새로운 가치 기준 또한 형성되고 있다.

[참고]


1. World Business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 (2025). Guidance on avoided emissions v2.0: Drive innovations and scale solutions toward net zero. WBCSD.

2. 회피된 배출(일명 스코프4)와 스코프 1~3는 동일한 회계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목적과 측정 철학을 가지므로 회피된 배출은 절대 스코프 1~3의 배출량을 줄이거나 상쇄하는데 사용될 수 없음.
기존 체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함
* 스코프 1~3: 기업이 얼마나 배출했는지를 측정하고 감축(reduction)하기 위한 회계 체계
* 회피된 배출: 기업의 제품과 기술이 사회에서 얼마나 배출을 줄이도록 만들었는지를 설명하는 비교 평가 개념

3.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Energy. 미국 에너지부 산하기관으로 에너지 기술 분야 내 고위험-고수익형 혁신을 추진하는 프로그램에 대하여 펀딩

4. ARPA-E. (n.d.). HESTIA: Harnessing Emissions into Structures Taking Inputs from the Atmosphere. U.S. Department of Energy. https://arpa-e.energy.gov/programs-and-initiatives/view-all-programs/hestia

5. 개발도상국의 산림 파괴와 황폐화를 막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후변화 대응 메커니즘. 산림 보호,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 탄소 흡수원 증진 등을 통해 감축 성과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는 구조

사회적가치연구원 팀장 정아름 · 선임연구원 정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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