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농촌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의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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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소멸의 최전선, 누가 농촌의 일상을 메우는가 ‘3,000명’과 ‘2,000명’. 농촌 지역사회에서 이 두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생존의 마지노선으로 해석된다. 인구가 3,000명 아래로 떨어지면 지역 내 보건·의료 서비스 시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시작한다. 인구가 2,000명 아래로 감소하면 인간다운 삶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의(

인구 소멸의 최전선, 누가 농촌의 일상을 메우는가

‘3,000명’과 ‘2,000명’. 농촌 지역사회에서 이 두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생존의 마지노선으로 해석된다. 인구가 3,000명 아래로 떨어지면 지역 내 보건·의료 서비스 시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시작한다. 인구가 2,000명 아래로 감소하면 인간다운 삶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의(衣)’와 ‘식(食)’을 제공하는 시설들마저 폐업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에 노출된 농촌 지역은 얼마나 될까? 현재 우리나라 1,400여 개 읍·면 지역 중 인구 3,000명 이하인 곳은 약 47%에 달하며, 2,000명 이하인 지역도 25%를 차지한다. 다시말해 농촌의 4분의 1은 이미 시장 논리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서비스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수익성 미달’의 공간이 되었다. 나아가 시장 기반 서비스뿐만 아니라 학교와 같은 공공 서비스 역시 위협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임계점 미만의 농촌 주민들은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농촌 곳곳에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움직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치열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역에 필요한 생활 서비스를 스스로 창출해 내는 자생적 실천들이 바로 그것이다. 수익성이 없어 시장이 외면하고, 공공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빈자리를 ‘사회적경제조직’이라는 이름의 주민연대가 채워가고 있다.

온전한 결핍이 만들어낸 자생력: 충남 아산시 ‘송악동네사람들’

충남 아산시 송악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젊은 층의 이탈과 조손가정의 급증으로 학교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공적 복지 인프라도 부족했던 이러한 결핍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은 스스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2004년 지역아동센터 설립을 시작으로 학교 살리기, 마을 교육 등 다양한 실천이 이어졌고, 흩어져 있던 활동을 하나로 모아 운영하기 위해 2016년에는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을 창립했다.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하나의 조직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변화와 성과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후 이들의 활동을 통해 나타난 지역사회의 변화는 훨씬 더 크고 다양했다. 주민들이 직접 교육과정에 참여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초등학교를 본교로 승격 시키는 성과를 이루었고, 2019년 주민 조사에서 ‘노인 돌봄’이 1순위 의제로 선정되자 즉각 15개 기관이 연대하는 마을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즉, ‘송악동네사람들’의 창립은 특정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의 생성이라는 결과(output)에 그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의제를 설정해 해결해 나가는 일련의 ‘자치과정’을 학습하는 성과(outcome)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생활서비스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기초 역량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을: 충남 홍성군 ‘함께하는 장곡 사회적협동조합’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는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급격한 고령화 속에서 독거노인 세 분이 고독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인들의 관계망 단절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세탁소 하나 없는 생활서비스의 공백 역시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절망 대신 연대를 택했다. 2019년 5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담은 ‘장곡면 2030 발전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하는 장곡 사회적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이들은 ‘생활돌봄 119’ 사업을 통해 25개 마을에 돌봄 반장을 배치하해 지역의 안전망을 구축했고, 버려진 군부대 건물을 ‘행복나눔공동빨래방’으로 개조해 노인들의 세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문제와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갔다.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이자 가장 큰 성과는, 구성원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던 봉사 활동을 넘어 행정과 보건소, 주민자치회를 하나로 엮어 ‘지역사회 전체가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데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상황 속에서도 장곡면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마을의 정과 온기를 회복하며 지역 주민들의 활력과 역동성을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마주할 생활서비스의 공백은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그동안 축적해 온 역량을 발휘할 또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피워낸 공동체의 기적: 강원도 인제군 ‘하추리영농조합법인’

과거 펜션 붐이 꺼진 이후 뚜렷한 소득원 없이 침체기에 빠졌던 강원도 인제군 하추리 마을은 공동체의 결단으로 반전을 이뤄냈다. 2009년 우수마을로 선정되며 받은 상금 5억 원을 개인에게 나누는 대신, 마을 공동부지 매입에 전액 투자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기업 ‘하추리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잡곡 브랜드 '도리깨잡곡', 마을카페, 논두렁축구대회, '혼자하는 산촌여행' 등을 운영하며 현재는 연간 1만 명이 찾는 농촌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기고 귀촌 인구가 늘어나는 등 경제적 효과도 컸지만, 하추리가 창출한 가장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는 다름 아닌 ‘자긍심의 회복’이다. “어디 가서 하추리 산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주민들의 말에는 소외되었던 산골 주민들이 되찾은 삶의 가치와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적을 ‘지속 가능한 일상’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의 조건

이상의 사례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분명 의미 있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방치된 영역을 주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아슬아슬한 방파제와도 같다. 지역 내에 사회적경제조직과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없다면, 결국 다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농촌 정책은 이러한 조직을 발굴하고,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첫째,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생활의 어려움과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학습하고 조직화하는 자발적 초기 단계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일회성 공모사업을 넘어서는 ‘운영 기반’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사회적경제조직은 개별 사업 중심의 단기 재정 지원이나 시설 보조에 의존하고 있어 지속적인 고용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경상비 지원 등을 포함한 제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시장 논리가 멈춘 곳에서 농촌의 사회적경제조직은 ‘효율성’ 대신 ‘연대’라는 힘으로 마을을 지탱하고 있다. 3,000명과 2,000명이라는 소멸의 임계점을 넘어, 이러한 따뜻하고 경이로운 기적들이 농촌의 견고한 일상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지방공기업평가원 경영평가실 위촉연구원 최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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