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문화: 전후 동기 돌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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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전통 놀이에서의 깍두기 문화를 기억하시나요? 여러분의 기억속에 깍두기는 어떤가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또 깍두기 문화에 대한 유래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학부 과정으로 국제개발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개발의 사례연구를 접하고 수집하다가 우연히 한국의 깍두기 문화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읽던 중 깍두기가 단순히

연구 기간 Jun 2021 - Dec 2021

여러분은 전통 놀이에서의 깍두기 문화를 기억하시나요? 

여러분의 기억속에 깍두기는 어떤가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또 깍두기 문화에 대한 유래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학부 과정으로 국제개발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개발의 사례연구를 접하고 수집하다가 우연히 한국의 깍두기 문화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읽던 중 깍두기가 단순히 그냥 좋았던 옛날의 문화가 아니라 특별한 서사와 사회적 가치를 함의하는 어떤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깍두기 문화는 무엇이며, 이는 어떠한 서사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함의하고 있을까요? 또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깍두기의 개념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김치의 한 종류인 깍두기의 개념은 조선시대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때는 깍두기 대신 '각독기'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깍두기라는 표현은 외관상 몸집이 건장하고 얼굴이 크고 각이 져서 머리를 짧게 깎으면 그 외관이 마치 깍두기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속어로 사용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깍두기 문화는 전통 게임에서 질이나 양적인 열위에도 모든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노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전통 놀이에서 깍두기 개념은 지역별로 다른 명칭이 있었습니다. 대구에서는 감자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광주에서는 앞다리 또는 꽃(꼭) 다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고로 깍두기라는 단어는 범지역적으로 통용되던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이에서의 깍두기 표현은 공식적으로는 1970년대 문화체육관광부(구 문화홍보부)의 한국 민속 문화 조사 보고서에 나타나는데요. 이는 전통 놀이 중 어느 팀에든 합류할 수 있는 비필수 인원을 일컫습니다. 또 북한의 문학이나 사전 등 자료를 찾아봤을 때, 김치로서의 깍두기의 표현은 존재했지만, 전통 놀이에서의 깍두기 라는 표현이나 개념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깍두기 문화의 기원

그렇다면 깍두기 문화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북한에는 놀이에서 깍두기의 개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깍두기 문화가 동기 돌봄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점,  표현과 개념이 사용된 시기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한국 전쟁에서 그 원인을 유추해봤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고아가 양상 되었습니다. 이산가족들이 생기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 또는 부모가 있어도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가족과 국가 기반의 돌봄 시스템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돌봄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형성, 인격 형성 등을 포함합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표적으로는 입양과 UN의 돌봄 센터 설립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절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돌봄의 공백이 생기는데 이걸 사회가 어떻게 소화했을까요? 기존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돌봄의 공백에선 비공식적 가족 돌봄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할머니 할아버지, 형과 누나들이 부모님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후 비공식 돌봄 경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많은 아동이 조부모에게 양육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같은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님들과 같이 맏형이나 형은 돌봄의 공백기 동안 동생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양한 강도로 보살핌을 제공했으며 일부는 형제자매를 지원하기 위해 자기 삶이 없는 삶을 살기도 했다고 합니다 (Park 2015). 또한 부모의 역할로 인식되는 '타인 존중'과 같은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기는 등 어린 형제자매를 부양하는 보살핌의 역할을 형 누나들이 더 광범위하게 수행하였습니다 (Park, 2015 p.63). 그들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동생들의 경제적 지원에서 사회적 기술 습득을 돕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형 누나들은 부모가 없을 때 동생들을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깍두기 개념이 북한의 문학/자료에서는 부재한다는 점 형, 누나들의 전후 돌봄의 역할을 했다는 점, 이 두가지 근거를 통해 깍두기 문화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동기의 역할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전후 자연스럽게 형제자매에게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민속놀이는 포용의 문화를 구상하게 되었고 이러한 친족 기반 보살핌은 아직 형들의 희생에 뒤따랐을지 모르지만, 전후에 효과적인 비상 비상조치로서 아이들의 가치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시말해 동기볼돔이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포괄적인 돌봄의 역할을 만들었고, 이것들이 고정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연구의 진행 상황은 깍두기 문화에 대한 문헌조사와 사전 비공식 담화를 통해 가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윤리심사를 진행 중 이며 서베이와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설문지에서는 깍두기 문화에 대한 경험과 동기와의 관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깍두기 문화를 외국학외국 학술지에 기고하여, 국가적 비상사태 때 비공식 가족(동기) 돌봄이 문화 생성과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과 잠재력을 알리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결론

아직 시작 단계의 연구이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은 본 연구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론 깍두기 문화와 같은 사례 연구 확립입니다. 이를 통해서 비공식 가족(형제자매) 돌봄이 국가적 비상사태, 개발도상국 또는 피난민 사태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이론화하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국제협력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이제 막 학부 과정을 마친 저는 곧 우간다로 가서 난민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들과 이야기하고, 이러한 이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올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국제 개발과 인류학/교육학 연구를 통해 과거의 문화를 분석하고 정책화함으로서 사회 변화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출처:

Dunifon, R. (2013) The influence of grandparents on the lives of children and adolescents, Child Development Perspectives, 7(1), pp. 55-60.

Lee, J., Ham, I., Lee, S., Kim, Y., Kim, G., Cho, Y., Gam, Y., Lee, J., Yoon, T. & Seok. S., (2013). Women’s Memories, Alternative Voices: Korean War and National Division. Gangwon-do: Arche.

Lee, L. (2000) The influence of the Korean War on women's lives - Focusing on the lives of 'war widows' in the 1950s. The Journal of History, (8), pp.9-55.

Park, Y. (2015) Parenting Experiences and Child-rearing Values of Women Who Have Experienced Korean War in Their Childhood: On the Perspective of the Life Course Narrative Study, Master Thesis,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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