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플] 예술가 긴급 대출 ‘펀드 에이’ (에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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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매우 특별한 일이었기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2020년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시작되고 예술가들이 빠르게 일거리를 잃기 시작했을 때, 한 예술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겠냐고,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작품 사 줄 사람은 없겠냐고 물었다. 사정을 물었더니, 차 없이 대중교통으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매우 특별한 일이었기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2020년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시작되고 예술가들이 빠르게 일거리를 잃기 시작했을 때, 한 예술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겠냐고,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작품 사 줄 사람은 없겠냐고 물었다. 사정을 물었더니,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다닌다는 이유로 과외를 못 하게 됐다고 했다. 당시 코로나는 낯설고 모호하며 공포스러운, 죽음의 감염병이었다. 그는 코로나가 그리 오래가겠냐며 필요한 액수로 100만 원을 얘기했다. 이용중인 공동 작업실의 월세가 25만 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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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적인 연락을 나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원하는 대답을 주지 못한 채 통화가 끝난 뒤에도, 생각은 이어졌다. 다른 예술가들도 같은 상황일까, 에이컴퍼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마침 사회성과인센티브로 받게 될 금액이 2천만 원 남짓이었다. 100만 원도 도움이 된다면, 2천만 원으로 여러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SK에서 주신 사회성과인센티브(SPC)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받은, 보너스 성격의 리워드였다.

동료들도 흔쾌히 동의 했다. 간단한 홍보 이미지와 온라인 양식을 만들어 그날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정된 프로젝트들이 중단되거나 취소돼 한가하던 우리는 오랜만에 야근까지 하며 예술가들에게 돈을 빌려줬다.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홍보하고, 예술가가 온라인 양식을 작성하면 1백만 원 또는 2백만 원을 24시간 안에 입금했다. 이자, 이유, 서류 없이 1장짜리 전자계약만 진행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미술이 아닌 연극, 문학 분야 예술가들이 신청하기도 했는데 받아들였다. 2천 만원은 금세 소진됐다. 예술가 긴급 대출 ‘펀드 에이’는 이렇게 시작됐다.

소식을 듣고 돈을 더 보태주신 분들이 계셔서 2600만 원의 자금을 추가로 예술가들에게 빌려줄 수 있었다. 주위에선 칭찬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는데 예술가들이 약속대로 돈을 갚겠냐는 것이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상환율을 예측할 수 없었다. 상환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안내 메일을 보냈다. 상환일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혹시 상환기간 연장을 원하는 분들에겐 한 달 또는 두 달 연장을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 결과, 2020년에 총 4600만 원을 32명에게 빌려줬고 2021년 상환율은 96.3%였다.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었기에 우리는 회수된 금액으로 한 번 더 ‘펀드 에이’를 실행했다. 2022년에는 3900만 원을 17명에게 빌려줬는데 상환율은 97.44%였다. 에이컴퍼니가 평소 사회적기업으로서 예술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예술가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전화했고, 마침 사회성과인센티브 금액이 확정된 때라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펀드 에이’는 훗날 에이컴퍼니의 히스토리를 되짚는다면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에이컴퍼니가 어떤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지 확실히 알게 됐다. 예술인복지재단이나 다른 기관에서 더 큰 금액을 빌려준다고 공고가 있었지만, 지금 당장 돈이 없는 예술가는 심사를 위해 그 많은 서류 제출하고 몇 개월씩 기다릴 여유가 없다. 예술가를 신뢰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으며, 빠르게 돈을 빌려주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우린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돌려받았다.

그 어떤 프로젝트를 했을 때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가장 많이 받았고, 본인은 ‘펀드 에이’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예술가들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메일들도 받았다. 1백만원과 2백만원 중 선택할 수 있음에도 다른 예술가들을 위해 1백만원만 빌리겠다는 예술가들을 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게 어떤 것인지 배웠다. 에이컴퍼니 구성원들에게 회사의 미션을 백 번 말해주는 것보다 ‘펀드 에이’를 함께 경험한 것이 나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예술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느끼며,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예술가를 도왔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이제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졸업 기업이지만 참여하는 동안 우리가 하는 일이 경제적 성과는 적을지라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 몇 안 되는 구성원들과 함께 헤아려보고, 보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큰 격려가 됐다. 무엇보다 사회성과인센티브 금액으로 진행한 ‘펀드 에이’를 통해 예술가들도 에이컴퍼니가 어떤 회사인지,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 SK가 사회적기업들을 위해 어떤 방식의 지원을 하고 있는지를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에이컴퍼니 대표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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